본문 바로가기
뇌과학

게으름은 뇌 때문일까?

by 꼬마씨 2025. 5. 7.

게으름은 뇌 때문일까?

행동을 시작하는 뇌 전두엽의 기능과 게으름

인간이 어떤 행동을 '결정하고 실행'하기까지는 생각보다 복잡한 뇌의 작용이 필요합니다. 그중에서도 전두엽은 이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전두엽은 뇌의 앞쪽에 위치한 부위로, 문제 해결 능력, 판단력, 미래 예측, 감정 조절, 그리고 가장 중요한 '행동 시작'을 담당합니다. 전두엽이 활발히 작동하면 우리는 일을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빠르게 실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전두엽의 활동이 둔화되면 아무리 머리로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도 실제로 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현대인의 전두엽 피로는 특히 디지털 과부하와 관계가 깊습니다. 하루 종일 알림에 반응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환경에 노출되면, 전두엽은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복잡한 결정을 내리는 것 자체가 뇌에 큰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결국, ‘해야 할 일은 머리에서만 맴돌고, 실제 행동으로는 옮겨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게으름'이라고 표현하지만, 실상은 뇌의 실행 기능 저하일 수 있습니다.

또한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전두엽 기능 저하가 빈번하게 발견되며, 이들은 특히 행동 개시가 어렵고, 미루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처럼 게으름은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뇌 구조와 뇌 에너지의 불균형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게으름을 이겨내려면 우선 지금 내 전두엽이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도파민과 보상 시스템 왜 쉬운 일이 더 끌릴까?

우리는 매일 수십 가지 선택을 합니다. 그 선택 중 상당수는 노력보다는 즉각적인 즐거움을 향합니다. 이 과정에는 뇌의 보상 시스템, 특히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도파민은 뇌에서 기대감이나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물질로, 인간이 무언가를 하고 싶게 만드는 핵심 동기입니다. 문제는 이 도파민이 즉각적 보상이 주어지는 행동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보고서 작성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을 해 봅니다. 그는 일단 노트북을 켭니다. 하지만 몇 분 만에 유튜브 썸네일이 눈에 들어옵니다. 클릭 한 번이면 재미있는 영상이 도파민을 팡팡 쏴줍니다. 반면, 보고서는 1시간 이상 머리를 써야 하고, 보상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결국, 뇌는 '보상 시스템 최적화' 전략에 따라 쉬운 길을 택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게으름의 도파민적 메커니즘입니다또한, 스마트폰 알림, SNS 피드, 짧은 영상 콘텐츠 등은 뇌가 짧은 간격으로 도파민을 자극받도록 구조화돼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 익숙해진 뇌는 집중이 오래 필요한 활동에 대해 도파민 지연을 느끼고, 이를 회피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해야 할 일을 계속 미루고, 짧고 즉각적인 즐거움에 중독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도파민 시스템을 적절히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작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했을 때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는 방식은 뇌의 도파민 회로를 자극하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게으름을 '고쳐야 할 나쁜 성격'으로 보지 말고, 도파민 회로를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보는 것이 더 건강한 접근입니다.

 

뇌의 에너지 절약 본능 – ‘생존 모드의 역효과

뇌는 인간의 몸 전체에서 약 2%밖에 되지 않는 작은 기관이지만, 기초 에너지의 20% 이상을 소비하는 고에너지 장치입니다.
그래서 뇌는 늘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는 방법을 찾습니다. 이게 바로 뇌의 에너지 절약 본능입니다.
이 본능은 우리가 무언가 새로운 행동을 시도하려 할 때 발동됩니다. 뇌는 낯선 행동, 비효율적인 행동, 불확실한 결과가 예상되는 행동에 대해에너지 낭비”로 간주하고, 저항 반응을 보입니다쉽게 말해, 낯선 일을 시도할수록 뇌는 이건 위험할 수 있어. 안전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자라고 속삭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변화보다는 익숙함, 실행보다는 회피를 선택하게 됩니다. 이런 메커니즘은 생존을 위한 적응 전략으로 유용했지만, 현대인의 해야 할 일에는 독이 됩니다.

또한, 인지 피로(cognitive fatigue)가 누적되면, 뇌는 더욱 보수적으로 반응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로운 업무나 행동 개시를 더욱 힘들게 느끼게 되며, 게으름이 아닌 생리적 한계 상태에 가까워집니다. 우리의 몸이 배가 고프면 쉬게 되듯, 뇌도 피로할 때는 게으름이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이런 구조를 알고 나면, 게으름은 단지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 뇌가 에너지 낭비를 막기 위해 자동으로 설정한 보호장치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됩니다. 따라서 게으름을 극복하려면 스스로를 탓하기보다, 뇌가 그만큼 지쳤다는 걸 인식하고 회복이 먼저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행동을 유도하는 뇌 자극 – 루틴의 힘과 뇌 적응성

게으름을 단기간에 의지로 극복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합니다. 이는 뇌가 강제적인 변화를 ‘위협’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뇌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되, 그 자극이 부담스럽지 않게 반복되는 형태로 전달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루틴입니다. 루틴은 뇌에 있어 ‘예측 가능한 행동 패턴’으로 분류되며, 반복될수록 신경 회로가 단순화되고 에너지 소모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진화합니다.

이를 뇌과학에서는  뇌 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 부릅니다. 뇌 가소성이란 뇌가 새로운 자극에 반응해 스스로 구조를 바꾸는 능력입니다. 즉, 반복되는 행동은 뇌 안에서 신경세포들이 자주 소통하게 만들고, 결국 그 행동을 ‘덜 어렵고, 덜 낯선 것’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이전엔 ‘귀찮고 하기 싫었던 일’도 어느 순간 습관처럼 가볍게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 수없이 알람을 맞추고, 억지로 눈을 뜨지만, 30일 이상 꾸준히 같은 시간에 기상하면 뇌는 그 시간에 자동으로 깨어날 준비를 하게 됩니다. 루틴이 뇌 구조를 설계하는 방식입니다.

또한, 루틴은 도파민 시스템과도 연결됩니다. 하루 중 일정 시간에 반복되는 행동을 했을 때, 그 행동에 대한 예측 가능한 보상이 형성되면 뇌는 그 루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예를 들어 ‘운동 후 좋아지는 기분’이나 ‘루틴 완료 후 체크리스트에 표시하는 쾌감’ 같은 작고 확실한 보상이 반복되면, 뇌는 그 행동을 보상 회로에 연결된 긍정적 행동으로 분류합니다. 이처럼 루틴은 단순한 습관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루틴은 뇌에게 안정감, 예측 가능성, 에너지 효율이라는 세 가지 긍정적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하며, 게으름이라는 뇌의 회피 본능을 자연스럽게 무력화시킵니다. 결국 게으름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한 번의 강력한 의지력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소규모 자극입니다. 뇌는 그렇게 반복 속에서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바뀝니다.

 

 

우리는 종종 게으름을 성격이나 의지력 부족의 문제로 단정합니다. 하지만 뇌과학의 관점에서 게으름은 단순한 태만이 아니라, 뇌 구조와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행동을 시작하려 할 때 발생하는 ‘내적 저항감’은 뇌의 특정 영역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맞아 내 얘기다' 하시는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우리는 게으름을 자책하거나 고치려 하기보다는, 뇌가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국 게으름이란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뇌의 전략이자 습관의 산물일 수 있습니다. 작은 루틴 하나에서부터 그 변화는 시작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뇌를 설득하는 법을 아직도, 여전히 배우는 중일지도 모릅니다